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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9 23:03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2017-12-24성탄주일예배)
 글쓴이 : 이석주
조회 : 12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누가복음2:1~7)                                  2017-12-24성탄주일예배


 나는 어떤 예수를 믿고 있는가?  내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예수가 내가 상상한, 내가 의도한, 내가 만들어낸 예수 일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른 예수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성경이 말하는 예수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뻐합니다. 만와의 왕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에서는 한나라의 국가 원수가 행차하면 그 수행원들의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모든 권세가 주께로부터 나옵니다. 그 분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아기 예수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었습니다. 7절 “첫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는 권세를 가진 힘 있는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고 거창 하기는 커녕 초라함의 극치를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눈여겨 볼만한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탄생을 환영한 것은 몇 마리의 짐승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뿐이었습니다. 초라한 탄생, 연약한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메시야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당시 성경지식에 해박했던 종교지도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메시야를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주님을 오해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따라 다니면서도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를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한 메시야가 아닌 인간이 만든 메시야상을 가지고 그들은 예수를 계속 따라 갔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꿈꾸는 예수를 믿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경속의 예수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예수를 믿고 싶어합니다. 내가 기대하는 예수, 내가 상상하는 예수, 내가 꿈꾸는 예수, 그런 예수를 믿고 싶어합니다. 만약 그런 예수를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예수를 환영할 수가 없습니다.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는 힘없고 나약해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힘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줄 능력있는 신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빌리자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누일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짐승과 함께 누워있는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알아보려면 상당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 되신분, 그 분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서 믿음을 갖게 하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낮은 곳으로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양으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합니다. 메시야가 그런 초라한 시골에서 오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견고하게 해줄 현실적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자신을 부풀리고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삶 속에서 그런 흔적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가 죽는 길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시며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주님이 관심을 보인자들은 소외된 자들,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힘없는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어린아이, 정죄받던 죄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십자가를 향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사시다가 결국 가장 흉약한 죄인으로 정죄받고,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 우리가 사랑하고 흠모한 예수의 실제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높아진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허영이나 자기 자랑을 가지고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버리신 예수, 한번도 당신의 영광을 스스로 추구하지 않았던 예수,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신 참된 예수를 따르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고 또 부인하며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에게 다가와 임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구약에서는 특정한 곳에서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주님에게 나아가기만 하면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이 당에 오셔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 안에 임하신 우리의 일상속에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 주님과 날마다 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깊어진다는 말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점점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성탄에 아기예수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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